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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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오늘의 젊은 작가 13권. 조남주 장편소설. 조남주 작가는 2011년, 지적 장애가 있는 한 소년의 재능이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삶의 부조리를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 <귀를 귀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서 10년 동안 일한 방송 작가답게 서민들의 일상에서 발생하는 비극을 사실적이고 공감대 높은 스토리로 표현하는 데 특출 난 재능을 보이는 작가는 신작 <82년생 김지영>에서 30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주인공 ‘김지영 씨’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고백을 한 축으로, 고백을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 자료와 기사들을 또 다른 축으로 삼는 이 소설은 1982년생 김지영 씨로 대변되는 ‘그녀’들의 인생 마디마디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소를 핍진하게 묘사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제도적 성차별이 줄어든 시대의 보이지 않는 차별들이 어떻게 여성들의 삶을 제약하고 억압하는지 보여 준다.

여권이 신장된 시대, 그러나 여전히 ‘여성’이라는 조건이 굴레로 존재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인생을 다룬 <82년생 김지영>은 조용한 고백과 뜨거운 고발로 완성된 새로운 페미니즘 소설이자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자료로 이루어진 ‘목소리 소설’이다.


전자책으로 미리 읽기


김지영 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3년 전 결혼해 지난해에 딸을 낳았다. 세 살 많은 남편 정대현 씨, 딸 정지원 양과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한다. 정대현 씨는 IT 계열의 중견 기업에 다니고, 김지영 씨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정대현 씨는 밤 12시가 다 되어 퇴근하고, 주말에도 하루 정도는 출근한다. 시댁은 부산이고, 친정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김지영 씨가 딸의 육아를 전담한다. 정지원 양은 돌이 막 지난 여름부터 단지 내 1층 가정형 어린이집에 오전 시간 동안 다닌다.

 

김지영 씨의 이상 증세가 처음 감지된 날은 9월 8일이었다. 정대현 씨가 정확하게 날짜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이 백로였기 때문이다. 정대현 씨가 아침 식사로 토스트와 우유를 먹고 있는데 김지영 씨가 갑자기 베란다로 나가더니 창을 열었다. 햇살은 충분히 눈부셨지만 창을 열자마자 식탁까지 찬 기운이 전해 왔다. 김지영 씨가 어깨를 움츠린 채 식탁으로 돌아와 앉으며 말했다.

“요 며칠 아침 바람이 쎄하다 싶더니 오늘이 백로였네. 누우런 논에 하아얗게 이슬이 맺혔겠네.”

정대현 씨는 아내의 말투가 왠지 젊은 사람 같지 않아 웃었다.

“당신 뭐야. 꼭 장모님 같아.”

“이제 홑잠바 하나씩 들고 다녀, 정 서바앙. 아침저녁으로 쌀쌀해.”

그때도 정대현 씨는 아내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부탁이나 당부를 하실 때면 오른쪽 눈을 조금 찡그리는 것도, 자신을 부를 때 정 서바앙, 하고 방 자를 길게 늘이는 것도 정말 비슷했다. 최근 육아로 지쳤는지 허공을 보며 정신을 놓거나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도 했지만, 김지영 씨는 원래 밝고, 웃음이 많고, TV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 곧잘 따라해 정대현 씨를 웃기곤 했다. 정대현 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아내를 한 번 안아 주고 출근했다.

그날 밤 정대현 씨가 퇴근했을 때, 김지영 씨는 딸과 나란히 누워 자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엄지를 빨고 있었다. 정대현 씨는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한참을 바라보다 아내의 팔을 당겨 입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김지영 씨는 아기처럼 혀를 살짝 내밀고 몇 번 입맛을 쩝쩝 다시다가 잠들었다.

 

며칠 후 김지영 씨는 자신이 작년에 죽은 동아리 선배 차승연이라고 말했다. 차승연 씨는 정대현 씨의 동기고 김지영 씨에게는 3년 선배다. 같은 대학 같은 등산 동아리 선후배인 부부는 사실 대학 시절에는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다. 학부 이후에도 계속 공부하려 했던 정대현 씨는 집안에 사정이 생겨 계획을 접어야 했다. 3학년을 마친 후 뒤늦게 입대했고, 제대한 후에는 1년가량 휴학하고 부산 집에 내려가 살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동안 김지영 씨가 입학해 동아리 활동을 한 것이다.

차승연 씨가 원래 여자 후배들을 잘 챙긴 데다 김지영 씨와 차승연 씨 모두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공통점 때문에 친해져 차승연 씨가 졸업한 뒤에도 두 사람은 자주 연락하고 만났다. 정대현 씨와 김지영 씨가 처음 마주친 것도 바로 차승연 씨의 결혼식 피로연장이었다. 차승연 씨는 둘째 아이를 출산하다 양수색전증으로 사망했는데, 안 그래도 당시 산후우울증을 겪던 김지영 씨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지원이를 재워 놓고 오랜만에 부부가 마주앉아 맥주를 마셨다. 한 캔을 거의 비웠을 즈음 김지영 씨가 갑자기 남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대현아, 요즘 지영이 많이 힘들 거야. 저 때가 몸은 조금씩 편해지는데 마음이 많이 조급해지는 때거든. 잘한다, 고생한다, 고맙다, 자주 말해 줘.”

“이건 또 무슨 유체 이탈 화법이야? 아이고 그래, 잘하고 있다, 김지영. 고생한다, 고맙다, 사랑한다.”

정대현 씨는 귀엽다는 듯 김지영 씨의 볼을 살짝 잡았는데, 김지영 씨가 정색하며 손을 탁 쳐 냈다.

“너, 아직도 내가 한여름에 덜덜 떨면서 고백하던 스무 살 차승연으로 보이는 거야?”

정대현 씨는 잠깐 얼어붙었다. 그러니까 거의 20년 전 일이다. 한여름 한낮이었고, 햇볕이 무척 뜨거웠고, 손바닥만 한 그늘도 없는 운동장 한가운데였다. 어쩌다 거기에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우연히 마주친 차승연 씨가 갑자기 좋아한다고 말했다. 좋다고, 좋아한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입술을 바들바들 떨면서, 말도 더듬으면서. 정대현 씨가 난감한 표정을 짓자 차승연 씨는 곧바로 마음을 접었다.

“아, 너는 아니구나. 알겠어. 오늘 얘긴 못 들은 걸로 해. 오늘 일은 없었던 거야. 난 예전이랑 똑같이 너 대할게.”

그러고는 또박또박 운동장을 가로질러 사라졌다. 이후로 차승연 씨는 정말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너무나 태연하게 정대현 씨를 대했고, 정대현 씨는 자신이 더위를 먹어 헛것을 봤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런데 그 일을 아내가 말하고 있다. 무려 20년 전, 두 사람만 아는 어느 볕 좋은 오후의 이야기를.

“지영아.”

더 이상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정대현 씨는 아내의 이름을 세 번쯤 더 불렀던 것 같다.

“그래, 너 좋은 남편인 거 다 아니까 지영이 이름 좀 그만 불러라. 에휴, 짜식.”

술에 취했을 때 차승연 씨의 말버릇이었다. 에휴, 짜식. 정대현 씨는 머리카락이 다 삐쭉 서는 것처럼 두피가 찌릿찌릿했다. 정대현 씨는 애써 태연한 척 장난치지 말란 말만 반복했고, 김지영 씨는 다 마신 캔을 그대로 식탁에 두고 양치도 안 한 채 방에 들어가 딸아이 옆에 누웠다. 김지영 씨는 바로 곯아떨어졌고, 정대현 씨는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하나 더 꺼내 단번에 들이켰다. 장난일까. 취한 걸까. TV에서나 나오는 빙의라든가, 뭐 그런 걸까.

다음 날 아침,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일어난 김지영 씨는 전날 밤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정대현 씨는 취했더랬나 보다 안심하면서도 어떻게 그런 끔찍한 주사가 있을까 새삼 몸서리를 쳤다. 사실 취해서 필름이 끊긴 거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고작 맥주 한 캔이었다.

그 이후로도 이상한 징후들은 조금씩 있었다. 평소에는 쓰지도 않는 귀여운 이모티콘을 잔뜩 섞어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 분명 김지영 씨의 솜씨도 취향도 아닌 사골국이나 잡채 같은 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정대현 씨는 자꾸만 아내가 낯설어졌다. 아내가, 2년을 열렬히 연애하고 또 3년을 같이 산, 빗방울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눈송이처럼 서로를 쓰다듬었던, 자신들을 반씩 닮은 예쁜 딸을 낳은 아내가, 아무래도 아내 같지가 않았다.

 

추석이 되어 시댁에 갔을 때 일이 터졌다. 정대현 씨가 금요일에 휴가를 냈고, 세 식구는 아침 7시에 집에서 출발해 다섯 시간 만에 부산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정대현 씨의 부모님과 점심을 먹은 후, 오랜 운전으로 지친 정대현 씨는 낮잠을 잤다. 전에는 장거리 운전을 할 때면 정대현 씨와 김지영 씨가 번갈아 운전대를 잡았는데, 딸이 태어난 후로는 정대현 씨가 운전을 전담한다. 아기는 카시트가 답답한지 차만 타면 울고 보채고 짜증을 냈고, 적당히 놀아 주고 간식을 먹여 가면서 어르고 달래는 데에 김지영 씨가 더 능숙했기 때문이다.

김지영 씨는 점심 설거지를 해 놓고 커피를 한잔하며 잠깐 쉬다가 시어머니와 함께 추석 음식 재료들을 사러 시장에 다녀왔다. 저녁부터는 사골을 우리고, 갈비를 재고, 나물 재료를 손질해 데쳐 일부는 무치고 일부는 냉동실에 넣어 두고, 전과 튀김을 만들 채소와 해산물들을 씻어 정리해 두고, 저녁밥을 차리고 먹고 치웠다.

다음 날, 김지영 씨와 정대현 씨의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을 부치고, 튀김을 튀기고, 갈비를 찌고, 송편을 빚고, 중간중간 밥을 차렸다. 가족들은 막 만들어진 명절 음식들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정지원 양도 낯을 가리지 않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넙죽넙죽 안겨 애교를 부려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다음 날이 추석이었다. 서울에 사는 정대현 씨의 사촌 형이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정대현 씨 집은 명절 당일에도 별로 번잡하지 않다. 온 가족이 늦잠을 잤고, 전날 만들어 놓은 음식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마치자 정대현 씨의 여동생, 정수현 씨의 가족들이 왔다. 정대현 씨보다 두 살 어리고 김지영 씨보다 한 살 많은 정수현 씨는 남편, 두 아들과 부산에 살고 있고 시댁도 부산이다. 시댁이 큰집이라 명절마다 차례 음식 준비하고 손님들을 치르느라 스트레스가 많다. 정수현 씨는 친정에 오자마자 뻗어 버렸고, 김지영 씨와 정대현 씨의 어머니는 푹 고아 놓은 사골국물로 토란국을 끓이고, 새 밥을 짓고, 생선을 굽고, 나물을 무쳐 점심상을 차렸다.

점심상을 치우자 정수현 씨는 지원이에게 주려고 샀다며 색색깔의 원피스와 튀튀, 머리핀, 레이스 양말들을 잔뜩 꺼냈다. 정수현 씨는 지원이에게 머리핀을 꽂아 주고 양말을 신기며, 나도 딸이 있으면 좋겠어, 역시 딸이 최고야, 하면서 조카가 예뻐 어쩔 줄 몰랐다. 그러는 동안 김지영 씨가 사과와 배를 깎았는데 모두들 배부르다며 거의 손대지 않았다. 송편을 내오자 정수현 씨만 하나 입에 물고 오물거렸다.

“엄마, 송편 집에서 한 거야?”

“그럼, 했지.”

“아이참. 음식 하지 말라니까. 아까도 말하려다 말았는데 앞으로는 사골도 끓이지 말고, 전도 시장에서 조금만 사고, 송편도 그냥 떡집에서 사. 차례도 안 지내는 집에서 뭐하러 음식을 이렇게 많이 해? 엄마도 다 늙어 고생이고, 지영이도 고생이고.”

순간 어머니의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스쳤다.

“자기 가족 먹이려고 음식 하는 게 뭐가 고생이야? 명절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음식 만들고, 먹고, 그러는 재미지.”

그리고 어머니는 갑자기 김지영 씨에게 물었다.

“얘, 너 힘들었니?”

순간 김지영 씨의 두 볼에 사르르 홍조가 돌더니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눈빛은 따뜻해졌다. 정대현 씨는 불안했다. 하지만 화제를 돌리거나 아내를 끌어낼 틈도 없이 김지영 씨가 대답했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잠시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거대한 빙하 위에 온 가족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정수현 씨가 길게 한숨을 쉬었는데 찬 입김이 나와 하얗게 흩어졌다.

“지, 지원이 기저귀 갈아야 하지 않나?”

정대현 씨가 급히 아내의 손을 잡아 끌었지만 김지영 씨는 그 손을 찰싹 쳐 떼 냈다.

“정 서바앙! 자네도 그래. 매번 명절 연휴 내내 부산에만 있다가 처가에는 엉덩이 한 번 붙였다 그냥 가고. 이번에는 좀 일찍 와.”

그러고는 또 오른눈을 찡긋했다. 그때 소파에서 동생과 장난치고 있던 정수현 씨의 여섯 살 난 큰아들이 떨어지며 울음을 터뜨렸는데, 아무도 달래지 못했다. 입을 떡 벌리고 정신을 못 차리는 어른들을 한번 둘러보며 아이는 금세 눈치껏 눈물을 멈췄고, 정대현 씨의 아버지가 호통을 쳤다.

“지원 에미,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어른들 앞에서 뭐하는 짓이야? 대현이랑 수현이랑 우리 가족 다 같이 얼굴 보는 게 1년에 몇 번이나 된다고. 명절에 가족들하고 시간 보내는 게 그렇게 불만이냐? 그랬어?”

“아버지, 그런 거 아니에요.”

정대현 씨가 일단 나섰지만, 정대현 씨도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김지영 씨가 정대현 씨를 밀어내며 차분히 말했다.

“사돈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 저희 집 삼 남매도 명절 아니면 다 같이 얼굴 볼 시간 없어요. 요즘 젊은 애들 사는 게 다 그렇죠.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 주셔야죠.”

결국 정대현 씨가 아내의 입을 틀어막아 끌고 나갔다.

“얘가 아파요, 아버지. 엄마, 아버지, 수현아, 진짜야. 얘가 요즘 좀 아파. 내가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게.”

세 식구는 옷도 안 갈아입고 그대로 차에 올랐다. 정대현 씨가 핸들에 얼굴을 묻고 괴로워하는 동안 김지영 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딸에게 노래를 불러 주었다. 정대현 씨의 부모님은 배웅도 않으셨고, 정수현 씨가 오빠네 짐을 챙겨 트렁크에 넣어 주며 당부했다.

“지영이 말이 맞아, 오빠. 우리가 너무 무심했어. 괜히 싸우지 말고, 화내지 말고, 무조건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그래. 알았지?”

“간다. 아버지한테 얘기 좀 잘 해 줘.”

정대현 씨는 화가 나지 않았다. 막막했고, 착잡했고, 두려웠다.

 

먼저 정대현 씨 혼자 정신과에 찾아가 아내의 상태를 말하고 치료 방법을 상의했다. 스스로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는 김지영 씨에게는 일단 잠을 잘 못 자고 힘들어 보여 상담을 권하는 거라고 말했다. 김지영 씨는 안 그래도 요즘 기분이 가라앉고 매사에 의욕이 없어 육아우울증인가 싶었다며 고마워했다.


1982년~1994년

김지영 씨는 1982년 4월 1일,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키 50센티미터, 몸무게 2.9킬로그램으로 태어났다. 김지영 씨 출생 당시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위로 두 살 많은 언니가 있고, 5년 후 남동생이 태어났다. 방 두 개에 마루 겸 부엌 하나, 화장실 하나인 열 평 남짓 단독주택에서 할머니와 부모님, 삼 남매, 이렇게 여섯 식구가 살았다.

 

김지영 씨에게 남은 가장 오래된 기억은 남동생의 분유 가루를 먹던 장면이다. 동생과 다섯 살 터울이니까 예닐곱 살 즈음의 일일 것이다. 별것도 아닌 그게 그렇게 맛있어서 엄마가 동생 분유를 탈 때면 옆에 붙어 바닥에 떨어진 가루들을 침 묻힌 손가락으로 찍어 먹었다. 가끔 엄마는 김지영 씨의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을 크게 벌리게 한 다음, 혓바닥 위로 진하고 달고 고소한 가루를 한 숟갈 부어 넣어 주곤 했다. 가루들은 침과 섞이며 녹아들어 끈적해지다가 캐러멜같이 말랑한 덩어리가 되었다가 스르르 목으로 넘어가 사라졌고, 입안에는 마르는 것도 아니고 떫은 것도 아닌 묘한 감촉만 남았다.

함께 살던 할머니 고순분 여사는 김지영 씨가 남동생 분유를 먹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분유를 얻어먹다 할머니께 들키기라도 하면 김지영 씨는 입과 코로 가루가 다 튀어나오도록 등짝을 맞았다. 김지영 씨보다 두 살 많은 언니 김은영 씨는 한 번 할머니에게 혼난 이후로 절대 분유를 먹지 않았다.

“언니는 분유 맛없어?”

“맛있어.”

“근데 왜 안 먹어?”

“치사해서.”

“응?”

“치사해서 안 먹어. 절대 안 먹어.”

김지영 씨는 치사하다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몰랐지만 언니의 기분은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혼내는 게 단순히 김지영 씨가 더 이상 분유 먹을 나이가 아니라거나 동생 먹을 게 부족해진다거나 하는 이유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억양과 눈빛, 고개의 각도와 어깨의 높이, 내쉬고 들이쉬는 숨까지 모두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최대한 표현하자면, ‘감히’ 귀한 내 손자 것에 욕심을 내? 하는 느낌이었다. 남동생과 남동생의 몫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고, 김지영 씨는 그 ‘아무’보다도 못한 존재인 듯했다. 언니도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갓 지은 따뜻한 밥을 아버지, 동생, 할머니 순서로 퍼 담는 것이 당연했고, 모양이 온전한 두부와 만두와 동그랑땡이 동생 입에 들어가는 동안 언니와 김지영 씨가 부서진 조각들을 먹는 것이 당연했고, 젓가락이나 양말, 내복 상하의,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들이 동생 것은 온전하게 짝이 맞는데 언니와 김지영 씨 것은 제각각인 것도 당연했다. 우산이 두 개면 동생이 하나를 쓰고 김지영 씨와 언니가 하나를 같이 썼고, 이불이 두 개면 동생이 하나를 덮고 김지영 씨와 언니가 하나를 같이 덮었고, 간식이 두 개면 동생이 한 개를 먹고 김지영 씨와 언니가 나머지 한 개를 나눠 먹었다. 사실 어린 김지영 씨는 동생이 특별 대우를 받는다거나 그래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원래 그랬으니까. 가끔 뭔가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자신이 누나니까 양보하는 거고, 성별이 같은 언니와 물건을 공유하는 거라고 자발적으로 상황을 합리화하는 데에 익숙했다. 어머니는 터울이 져서 그런지 누나들이 샘도 없고, 동생을 잘 돌봐 준다고 항상 칭찬했는데, 자꾸 칭찬을 받으니까 정말 샘을 낼 수도 없었다.

 

김지영 씨의 아버지는 사 형제 중 셋째인데 첫째 형은 결혼도 하기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고, 둘째 형네 가족은 일찌감치 미국으로 이민 가 자리를 잡았다. 막내와는 유산 분배와 노모 부양 문제로 크게 싸우고 의절해 왕래를 안 하고 있다.

형제들이 태어나고 자라던 시절은 살아남기도 힘에 부치던 때였다. 전쟁으로, 병으로, 굶주림으로 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어 나가는 와중에 고순분 여사는 남의 농사를 지어 주고, 남의 장사를 팔아 주고, 남의 집 살림을 살아 주고, 또 본인 살림까지 알뜰살뜰 꾸려 가며 악착같이 사 형제를 건사했다. 얼굴이 하얗고 손이 고운 할아버지는 평생 흙 한 줌 쥐어 보지 않았다. 가족을 부양할 능력과 의지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계집질 안 하고, 마누라 때리지 않은 게 어디냐고, 그 정도면 괜찮은 남편이었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키워 낸 아들들 중 결국 자식 노릇을 하는 건 김지영 씨의 아버지뿐이었는데, 할머니는 자신의 허망하고 비참한 처지를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위안했다.

“그래도 내가 아들을 넷이나 낳아서 이렇게 아들이 지어 준 뜨신 밥 먹고, 아들이 봐 준 뜨끈한 아랫목에서 자는 거다. 아들이 못해도 넷은 있어야 되는 법이야.”

뜨신 밥을 짓고, 뜨끈한 아랫목에 요를 펴는 사람은 할머니의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이자 김지영 씨의 어머니인 오미숙 씨였지만 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다. 살아온 역경에 비해 마음이 여유롭고 또래 시어머니들과는 달리 며느리를 아끼던 할머니는 진심으로 며느리를 생각해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들이 있어야 한다,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 아들이 둘은 있어야 한다…….

김은영 씨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채 어머님, 죄송해요, 하며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는 따뜻하게 며느리를 위로했다.

“괜찮다. 둘째는 아들 낳으면 되지.”

김지영 씨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채 아가, 미안하다, 하며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는 이번에도 따뜻하게 며느리를 위로했다.

“괜찮다. 셋째는 아들 낳으면 되지.”

김지영 씨가 태어나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세 번째 아기가 찾아왔다. 어느 밤, 어머니는 집채만 한 호랑이가 대문을 부수고 뛰어 들어와 치마 속으로 폭 안겨 오는 꿈을 꾸었고 아들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김은영 씨와 김지영 씨를 받아 준 산부인과의 할머니 의사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 몇 번이나 초음파 기계로 아랫배를 훑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애기가, 참, 참, 예쁘네…… 언니들을 닮아서…….”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울다 울다 먹은 것을 다 토해 냈고, 할머니는 구역질하는 며느리에게 화장실 문 너머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은영이 때도, 지영이 때도, 입덧이라고는 안 하더니 이번에는 웬 입덧이 이렇게 요란하다니? 쟤들하고는 다른 애가 들어섰는갑다.”

어머니는 화장실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한참을 더 울면서 토했다. 딸들이 모두 잠든 늦은 밤, 어머니는 뒤척이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만약에, 만약에, 지금 배 속에 있는 애가 또 딸이라면, 은영 아빠는 어쩔 거야?”

무슨 그런 질문이 다 있냐고, 아들이든 딸이든 소중하게 낳아 키워야 한다고 말해 주길 기다렸지만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응? 어쩔 거야, 은영 아빠?”

아버지는 벽을 향해 돌아누우며 대답했다.

“말이 씨가 된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자.”

어머니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소리 없이, 베개가 흠뻑 젖도록, 밤새 울었다. 아침이 되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침이 줄줄 흐를 정도로 입술이 퉁퉁 부었다.

정부에서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펼칠 때였다. 의학적 이유의 임신중절수술이 합법화된 게 이미 10년 전이었고, ‘딸’이라는 게 의학적인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성 감별과 여아 낙태가 공공연했다.1) 1980년대 내내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 성비 불균형의 정점을 찍었던 1990년대 초, 셋째아 이상 출생 성비는 남아가 여아의 두 배를 넘었다.2) 어머니는 혼자 병원에 가서 김지영 씨의 여동생을 ‘지웠다’. 아무것도 어머니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모든 것은 어머니의 책임이었고, 온몸과 마음으로 앓고 있는 어머니 곁에는 위로해 줄 가족이 없었다. 맹수에게 새끼를 잃은 동물처럼 울부짖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의사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미치지 않은 것은 오로지 할머니 의사의 그 한마디 덕분이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아이가 생겼고, 남자인 아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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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itional information

시리즈

오늘의 젊은 작가 13

제본

양장본

페이지

192쪽

지은이

조남주

출판사

민음사

출간일

201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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